[이슬기의 무기가 되는 글들] 나는 당신과 소통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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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기의 무기가 되는 글들]
『당신과 내가 대화할 수 있을까』
정희진 지음, 창비 펴냄
『당신과 내가 대화할 수 있을까』정희진 지음, 창비 펴냄 ⓒ창비


다양한 사람들에게 페미니즘에 관해 말을 건넨다. 청자는 중장년 남성일 때도, 청년 여성일 때도 있다. 글을 쓸 때도 어느 정도 독자층을 예상하며 쓰지만, 말은 조금 다른 영역이다. 바로 눈앞에 있는 대상의 표정이나 몸짓을 살펴 가며 즉각적인 반응에 대응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강연을 하다 보면 가끔 뭐가 왔다 갔나 싶게 분위기가 내려앉고, 내 목소리만이 좌중을 가득 메울 때가 있다. 나는 그때가 청중들과 더욱 적극적으로 조우하는 찰나라고 믿지만, 아닐 때가 더 많을 것이다.

『당신과 내가 대화할 수 있을까』는 여성학 연구자 정희진이 3년 만에 내놓은 신작 제목이다. 결론적으로는 "할 수 없다"는 게 책이 내놓는 답변이다. 그러나 그 소통 불가능성을 '인간'이라는 메시지 송·수신자와 '언어'라는 매개를 함께 공부함으로써 견딜 수 있다는 게 책의 논지다.

소통이 불가능한 이유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고통조차 남과 나눌 수 없을 만큼 전 지구에 존재하는 82억 개의 몸은 개별적이다. 거기에 젠더·계급 등에 따라 사회적 위치가 다르고 다른 언어를 지닌다. 설령 가족일지라도 둘 이상의 사람들 사이에는 권력관계가 작동하며, '공동체의 약속'이라던 언어는 기실 '일시적이고 일방적인 고지'에 가깝다. 모든 이의 말은 사회에서 동등하게 들리지 않으며, '누가, 누구의 말을, 어떻게 들을 것인가'를 뜻하는 '듣기의 정치'는 끊임없이 작동 중이다. 이렇듯 불가해한 상황의 한복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에 참여하는 나 자신을 아는 일이다. 스스로를 교차하는 여러 요소들―젠더, 계급, 연령, 장애 여부, 인종, 지역 등에 대한 자각을 통해 자신을 상대화하고 성찰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한 가지 정체성만으로 사는 사람은 없고, 어떤 층위에서는 사회적 소수자인 사람이 다른 층위에선 기득권일 수 없다. 이러한 복잡한 차이들을 가로질러서 살고, 이를 가로질러서 소통해야 함을 수많은 개인들은 알 필요가 있다.

책은 화자 뿐 아니라 청자의 윤리를 서술하는 일에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우리가 지식을 전달할 때, 심지어는 고통을 말할 때도 자주 부딪히는 반응들이 있다. "나는 본 적 없는데?" "내 주변은 아닌데?" 저자도 석사 논문을 쓸 당시 비슷한 반응에 직면했다. 가정폭력에 관한 상대적으로 '경미한' 사례들만 선별했음에도 심사위원 중 한 명으로부터 "너무 심각한 사례만 나열해서 중립성이 없다"는 지적을 들었다. 밀리언셀러가 된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겪었던 백래시나 많은 여성들이 가부장제하에서의 고통을 고백할 때 겪는 반응들과 흡사하다. 이에 관한 저자의 분석이 통렬하다. "단지 타인의 고통을 수신할 수 있는 인식의 지평이 좁은 것이지요. 자기 인식이 부족하면 타인의 진실을 대면했을 때 그것을 진실로 수용하기보다 상대를 먼저 의심하게 됩니다."(150쪽) 범죄 피해자의 토로 앞에서도 피해자의 자격을 거듭 묻는 사회의 '자기 인식'을 되묻게 되는 지점이다.

"페미니즘을 싫어하는 남자친구를 설득하고 싶다"는 학생에게 "그럴 에너지로 열심히 공부해서 나중에 그들에게 강사료를 받으며 강의하세요"라고 할 만큼 단호한 저자는 소통의 불가능성 앞에서 최소한의 소통법을 제안한다. 여기에는 우리가 남에게 쉬이 설득되지 않는 만큼, 타인 또한 그렇다는 것을 새기는 일이 먼저다. 나를 지키는 것을 목표로, 좋은 사람으로 남고자 하는 욕망 또한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저자는 구체적 방안으로 '침묵', '무응답', '솔직하게 말하기', '협상적 말하기', '타인을 끝까지 설득하지 않는다', '대화 종료의 권리' 등 6가지를 내놓는다. 침묵은 자기 보호의 수단이자 저항의 말하기 방식이고, "그냥요"로 대표되는 무응답은 무례와 폭력에 대응하는 일이다. 인상적인 것은 보다 적극적인 의사 표현 방식으로서의 '솔직하게 말하기'와 '협상적 말하기'다. 솔직하게 말하기는 세간의 통념을 뒤집는 동시에 무례를 벌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저자는 공무원 대상 성희롱 예방 교육을 할 당시 어느 남성 공무원으로부터 "선생님은 성(性)을 연구하시니까 남편하고 잠자리가 끝내주시겠어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질문을 가장한 성희롱이나, 나의 경험에 비추어서도 이를 강연 자리에서 명백히 지적하기란 쉽지 않다. 저자는 이렇게 답했다. "저는 남편하고 안 자는데요? 어머니랑 자는데요? 간병하느라고요." '협상적 말하기'는 서로가 완벽한 합의에 이를 수 없음을 인정하고 대화를 멈추는 것을 뜻한다. "여기까지 합시다"라는 일종의 마지노선을 설정해 더 이상의 소모적인 논쟁을 방지한다.

대화의 목적은 합의가 아니라 새로운 언어의 생성이라는 말로, 책은 끝을 맺는다. 대화란 나와 다른 이를 만나 그의 반응과 이야기를 들어가며 나의 경험과 생각을 자꾸자꾸 다른 언어로 만들어가는 일이다. 즉각적인 합의를 이룰 수는 없을지언정, 나의 새로운 언어를 모색함과 동시에 상대의 언어 또한 탐색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저자는 한 때 '연대'라는 말을 부담스럽게 생각했지만, 이를 영원 불변한 것으로 확대 해석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순간의 온기를 그대로 긍정할 수 있다고 봤다. 나는 2024년 동짓날의 남태령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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