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명 중 9명 여성’ 의상·미술 방송 스태프... 성희롱 경험·최저 임금도 못 받아

입력
기사원문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의상·분장·미술·소품 분야
방송 및 엔터 종사자 실태 조사

26.7% 성희롱·15.2% 성추행 경험
10명 중 7명 폭언 경험·폭력은 2명꼴
일상적으로 폭력·성폭력 노출

용역·하도급 계약으로 현장 관행 개선 배제
추정 평균 주당 근로시간은 84.8시간
최저임금 미달에 체불·지연 빈번
여성 진출 비율이 높은 방송·엔터 산업 내 미술 분야 종사자들이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실태 조사 결과가 나왔다. 기사 내용과 무관한 사진. ⓒ연합뉴스


드라마에서 미술 분야로 묶이는 의상·분장·미술·소품팀은 여성 종사자 비율이 높다. 촬영 전후·안팎에서 장시간 노동이 이어지지만, 상대적으로 저임금에 시달린다. 폭언·성희롱·성추행이 빈번하게 이뤄지고, 폭행까지 발생한다. 그러나 촬영 현장에서 목소리를 내기는 쉽지 않다.

최근 콘텐츠진흥위원회(콘진원)는 촬영 현장 내 성희롱·성추행 발생률이 과거보다 줄어들었다고 판단해 성희롱·성추행 빈도를 별도로 조사하지 않고 '권리 침해'로 포괄해 통합 조사하고 있다고 알렸다. 그러나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한빛센터)가 용역·하도급 계약으로 취약한 위치에 있는 의상·분장·미술·소품 분야 방송 및 엔터테인먼트 종사자 223명을 조사한 결과(복수 응답 가능) 26.7%가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었고, 15.2%는 성추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폭언(68.1%)은 10명 중 7명꼴로 피해를 입었고, 폭행(14.1%) 비율도 적지 않았다.

이들은 1주 5.5일 하루 평균 15시간 일하는 일터에서 일상적으로 폭력과 성폭력에 노출돼 있었다. 특히 여성 응답자의 성희롱·성추행 응답이 높게 나타났다. 한빛센터는 "여성 노동자들에게 안전한 직장이 아님을 나타내는 결과"라고 밝혔다.

노동 권리 침해에도 산업 관행 개선에서 배제

폭력과 성폭력을 경험한 응답자들은 대부분 피해를 감내해야 했다. 성희롱은 응답자 51명 중 50명이 문제 제기를 하지 못하고 상황을 넘겼고, 성추행 역시 29명 중 28명이 참고 넘어갔다고 답했다. 폭행은 피해자 전원이 대응하지 못했다.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는 21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된 이한빛PD 10주기 추모주간 방송노동실태 토론회 '드라마 스태프의 숨겨진 노동시간, 가려진 권리'에 참석해 "지난 2019년 조사 당시에도 여성 비율이 높았고, 업무적 위치가 보조적으로 느껴진다는 응답이 있었다. 배우와 카메라는 없어도 될 것 같지만, 의상은 없어도 되는 노동자로 취급받는다고 전했다. 대상을 보살피거나 수발드는 노동처럼 느껴진다는 반응도 있었다"며 "촬영 현장에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구조"라고 짚었다.

이어 "방송 산업이 화려하고 세련돼 보이지만 건설과 비슷하다. 프로젝트로 진행되고, 다단계 하도급으로 이뤄져 있다. 프로젝트 구성도 관계성으로 진행된다"며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프로젝트 때마다 만들 수 없는 현실인 만큼 건설 노동자의 경험에 따라 보험, 안전 교육 등 산업 차원의 체계가 필요하다. 감독관의 출입 등 산업 차원의 조사와 관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드라마 '청춘기록'에서 박소담이 연기한 안정하는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꿈꾸는 청춘이지만, 직장 내 괴롭힘과 폭언 등에 시달리며 힘든 시간을 보낸다. ⓒtvN


근로시간 적용 사각지대, 최저임금 미달에 체불·지연 다수

의상·분장·미술·소품 분야는 촬영 현장 바깥에서도 노동이 지속된다. 하지만 현행 근로시간은 실제 촬영 시간을 규정하고 있어 시간 외 노동은 보상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임금조차도 최저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이는 엔터 산업 내 의상(스타일리스트), 분장(메이크업 아티스트) 등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특히 실장(팀장)급이 팀원 몫과 업무 수행에 소요되는 비용을 모두 묶어 계약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하청 방식의 구조로 문제가 발생해도 직접적인 의견을 내기 어려웠다.

실태 조사에서 전체 스태프 응답자의 추정 평균 주당 근로시간(촬영장 바깥 노동 포함)은 84.8시간으로, 법으로 규정된 주 52시간을 30시간 이상 넘긴 초장시간 노동을 수행하고 있었다. 전체 38.7%가 월 250만원 미만의 임금을 받았고, 최저임금 월환산액 미만 응답자는 32.5%에 이르렀다. 임금 지급 지연 경험은 절반 이상인 54.5%가 경험했다. 체불은 37.2%가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구두로 계약해 업무를 진행한 이들도 27.2%로 나타났다.

여성 진출이 많은 직업군에서 발생하는 문제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실제 조사 응답자 223명 중 196명(87.9%)이 여성이었다.

송하민 한빛센터 차장은 "미술 분야는 현장 관행 개선에서 제외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드라마, 매니지먼트 등 현장을 가리지 않고 엔터 산업 전반에 자리한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한빛센터는 현장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근로계약서 작성 관행 정착 △개인 손해배상 부담 관련 관행과 원청 발주·거래 관행 개선 △근로시간 기록 의무화 △노동자 추정제도 도입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찬웅 고용노동부 근로기준정책과 서기관은 "근로시간 파편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근로 감독이 이뤄져야 한다"며 "장관님(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역시 방송업계 내 노동법령 사각지대 발생에 대해 노동 감독관이 철저하게 감독하고 불법 사항을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방송업계는 정규 방송 외 프리랜서 위장 계약이 많은 만큼 여러 방향으로 살피려고 한다. 어떻게 감독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한편 한빛센터는 고(故) 이한빛PD의 10주기를 맞아 추모주간을 진행한다. 한빛센터는 방송사 및 미디어 산업에 근무하는 비정규직 및 취약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와 복지 증진 및 방송 제작 환경 개선에 힘쓰고 있다. 지난 13일 추모미사를 진행해 고인의 죽음을 기렸으며, 오는 26일 10주기 추모제를 진행할 예정이다. 31일까지는 고인의 온라인 추모 공간을 운영한다.

고 이한빛PD는 2016년 CJ ENM에 PD로 입사해 드라마 조연출로 재직하던 중 폭언과 노동 착취 등을 겪고 세상을 떠났다. 방송업계의 문제점을 지적한 고인의 뜻은 하루 20시간 이상 노동을 요구하던 방송업계의 관행을 뒤집었다. 2018년 7월 방송업 최대 노동시간이 주68시간으로 규정됐고, 2021년 7월부로 주52시간이 적용됐다.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생활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이슈 NOW